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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September 5, 2020

[아무튼, 주말]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코로나 집콕' 하니 설레도 버리더라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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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건국 수준으로 대청소를 했다. 버리고 또 버리니 아니 버릴 것이 없었다. 그동안 제 아니 버리고 “집만 좁다” 했다. 코로나 사태 속 집콕족이 되고 나니 집 구석구석이 자세히 보이기 시작했다. 많은 짐으로 포화 상태가 되어 소화불량에 걸린 집을 치우다 지쳐 혹독한 비움을 실천해봤다. 서랍, 냉장고 속을 꽉꽉 채운 유물을 하나둘 발굴할 때마다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트로트 가사 한 구절이 절로 생각났다.

이제는 생존 비우기 열풍이다.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며 집안 물건을 덜어내고 비우는 게 놀이처럼 번지고 있다. 4년 전 지진 사태로 인한 비우기 열풍 때와는 사뭇 다른 ‘생존 비우기’다. 비운 자리엔 집콕을 위한 생존 가구와 물건들이 채워진다. 바야흐로 ‘코로나 미니멀 라이프’ 시대. 비우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처절한 서바이벌이 시작됐다.

유민재, 최승우씨 부부가 주말이었던 지난 달 30일 집 거실에 앉아 비우기 놀이를 하고 있다. 서랍 속, 수납장 속 방치돼있던 물건들은 재발견되기도, 버려지기도, 다른 이의 품에 가기도 했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어느 맥시멀리스트의 고백

“이젠 비워야 할 때”라고 했다. 서울 전농동에 사는 결혼 1년 차 부부 유민재(33)·최승우(35)씨는 벌써 한 달째 마주 앉아 틈틈이 ‘비우기 놀이’ 중이다. 각자 공간에서 버릴 것들을 ‘발굴’해 이들의 운명을 함께 판단한다. 오늘은 최씨가 결혼 전 구독했던 2018년도 판 게임 잡지, 서랍 한 칸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던 각종 필기구, 얼마 전 결혼 1주년 기념일에 사용했던 파티용품, 주변 머리를 단정하게 눌러준다는 ‘아이디어 머리띠’, 골동품이 된 낡은 폴더폰이 등이 테이블에 올랐다.

“아직 잡지에 실린 게임 공략법을 독파하지 못해서 버릴 수가 없다”는 남편 최씨의 설득에 이번에도 게임 잡지는 기사회생에 성공했다. 신혼집을 꾸밀 때부터 정리 대상으로 수시로 소환되는 아이템이다. 다음은 TV 장 아래 한 짐이었던 파티 용품. 대량으로 구매했던 풍선, LED 캔들 등을 사이에 두고 “부피가 커서 버려야 할 것 같다” “다시 사긴 아까우니 다음을 기약하며 간직하자”는 의견이 오갔다. 결론은 회생. 각종 필기구 차례에선 깊은 고민에 빠졌다. 기념품으로 받아온 펜과 경제성을 생각해 묶음 단위로 샀던 알록달록한 펜은 버리자니 아깝고, 두자니 집안을 너저분하게 만드는 주범. 남편 최씨가 “그냥 눈 딱 감고 버리자”고 하니 아내 유씨가 펜 하나를 집어 들며 “이건 정말 잘 나오는 펜”이라고 했다. 펜의 그립감, 남은 잉크양 등을 일일이 확인해야 해 보류 대상으로 분류했다.

유민재·최승우씨 집에서 발굴된 물건들. '검수'를 마치면 버림, 나눔, 중고 판매 등 분류 작업에 들어갔다. 대부분 버림에 해당됐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이번엔 낡은 폴더폰이 최씨 손에 들렸다. “내가 대학 입학하고 처음 썼던 휴대전화”라며 의미를 부여하자 유씨가 받아친다. “그럼 그때 여자친구 사진 같은 것도 들어 있겠네?” 최씨는 훗날 불화의 씨앗이 될 소지가 역력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냥 버리는 게 낫겠다”며 깨끗하게 내려놨다.

각각 가정의학과, 내과 전문의인 부부가 각자 학회에서 받아온 기념 수첩과 메모지, 학회지와 자료도 ‘선고대’에 올랐다. “이런 기념품용 수첩과 메모지는 안 받을 수도 없고, 누굴 주기도 참 애매해.” 유씨의 말에 최씨도 격하게 공감한다는 듯 끄덕끄덕. 신혼 초 샀던 전자제품 사용설명서, A/S와 되팔기 등을 고려해 간직하고 있던 전자제품 등은 재활용 수거함과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유씨는 “한 달 뒤 이사가 결정적 계기가 되긴 했지만 코로나 사태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무엇이 중요한지 생각하게 됐다. 정리 전문가 곤도 마리에의 말처럼 설레지 않는 것은 버리고 비우는 삶을 실천해보려 한다”고 했다.

유민재씨가 '나눔'할 옷들을 정리하고 있다. 유씨는 정리 전문가 '곤도 마리에'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를 인용해 "더 이상 설레지 않아서 필요한 이에게 주기로 했다"고 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고덕동 문미리나씨가 딸 서재아양과 살림 비우기 놀이를 하고 있다. "몇 톤을 갖다 버렸는데도, 버리고 비울 것들이 남았다"고 했다. /장은주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고덕동에 사는 문미리나(40)씨도 요즘 비우기 놀이에 빠졌다. 학원을 운영하는 문씨는 코로나 사태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그동안 실천하지 못했던 미니멀 라이프에 도전하는 중. 한데 마음처럼 쉽지는 않다. 은근 ‘맥시멀리스트’(잡동사니 쌓아두는 스타일)인 남편과 인형 모으기가 취미인 열 살 딸이 최대 방해꾼이다. 재택근무로 집에서 책상 생활을 많이 하는 남편은 책상 아래 발 지지대까지 갖추고 일해야 하는 성격. 비우기 놀이에 동참은 언감생심이다.

문미리나씨가 다 읽은 책들을 정리하고 있다. 책으로 가득 찼던 집에서 책만 뺐는데도 한결 가벼워진 분위기다. / 장은주 영상미디어 기자

집안의 외며느리인 문씨는 손님 대접을 위해 결혼 초 샀던 그릇과 거실을 병풍처럼 둘렀던 책부터 싹 정리했다. 문씨는 “선물로 받았다가 아낀다고 박스째 고이 간직한 것, ‘1+1(원 플러스 원, 하나 사면 한 개 더 주는 것) 마법’에 걸려 사두었던 것 중 유통 기한이 지난 것이 꽤 있었다. ‘아끼다 똥 된다’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릇 비우기 실천 후 주방 수납장도 가벼워졌다. /장은주 영상미디어 기자

◇코로나 사태 新 미니멀 라이프 열풍

아슬아슬 ‘테트리스’(벽돌 쌓기 게임)처럼 쌓아둔 물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리기 일보 직전. 위험 경보와 함께 드디어 칼을 빼든 집들이 늘고 있다. 집콕 생활 속 매일같이 비우려는 자와 채우려는 자들의 신경전이 펼쳐지는 요즘, ‘아무튼, 주말’이 SM C&C 설문조사 플랫폼 ‘틸리언 프로(Tillion Pro)’와 함께 20~60대 성인 남녀 1032명을 대상으로 ‘코로나발 미니멀 라이프’에 관해 물었다.

코로나 사태 후 라이프 스타일을 묻는 문항에 ‘집콕 생활에 필요한 물건은 들이고, 불필요해진 물건은 비우는 코로나 미니멀 라이프를 따르고 있다’는 응답자가 전체 39.1%로 가장 많았다. ‘집안의 물건들을 줄이고 비우는 미니멀 라이프를 따르고 있다’는 13%. 절반 이상이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한다는 얘기다.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관심도 변화 역시 코로나를 기준으로 ‘높아졌다’(40.1%), ‘매우 높아졌다’(15.6%)가 절반 이상이었다. 미니멀 라이프에 관심이 높아진 이유에 대해서는 46.1%가 ‘집콕 생활이 장기화되면서 집안 물건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33.6%가 ‘코로나 사태 후 라이프스타일에 변화를 주고 싶어서’, 16.3%가 ‘재택근무 확대 등 집의 역할 변화에 따라’라고 답했다. 미니멀 라이프 실천이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선 ‘오랫동안 지속해온 습관 때문’(31.1%)이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가족 구성원의 라이프스타일이 달라서’(23.3%), ‘바쁜 일상에 집 정리할 시간이 부족해서’(19.5%), ‘집콕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이 점점 많아져서’(18.5%)가 뒤를 이었다.

‘비울 것이냐, 채울 것이냐’ 갈림길에 선 시대, 버리고 비우는 삶을 가치 있게 여기는 미니멀 라이프는 코로나 사태를 거치며 ‘코로나 미니멀 라이프’라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로 변종되고 있다. 간소함을 강조하기보단 ‘간소한 생존법’을 이야기한다. 묵은 살림들과 취향을 위해 존재했던 것들의 부피를 줄이는 대신, 그 자리에 슬기로운 집콕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생존 장비들은 갖춘다. 홈트(홈트레이닝) 용품, 재택근무·온라인 학습 환경을 꾸미며 불안 심리에 마스크와 손 소독제까지 쟁여둔다. 비우기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TV에선 정리와 수납을 통해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정리’라는 키워드가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에 등극할 정도로 정리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인스타그램엔 ‘미니멀 게임’에 동참하는 이들이 급격히 늘었다. 인스타그램에는 하루에도 수백 개의 피드가 #MinsGame이라는 해시 태그를 달고 올라온다. 미니멀 게임은 일종의 비우고 버리는 것을 게임처럼 즐기는 행위. ‘두 남자의 미니멀 라이프’ ‘미니멀리스트’의 저자인 조슈아 필즈 밀번과 라이언 니커디머스가 제안한 이래 전 세계 미니멀리스트들이 참여하고 있다. 멀쩡한 탓에 좀처럼 버리기 아까웠던 살림도 중고 물품 지역 간 직거래 플랫폼인 당근마켓 등장 후 중고 물품 거래가 수월해지며 비우기 열풍에 불을 지폈다. 당근마켓에 따르면 거리 두기가 시행된 3~4월 순 이용자 수는 3월 660만, 4월 740만명으로 늘었다가 7월 900만명을 돌파했다. 전년 동기 대비 2.2배 증가했다.

미니멀라이프 설문

◇‘비우기 놀이' 하며 재테크도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에 사는 요리 전문가 김해진(35)씨는 올 초 비우기 놀이를 시작해 지루한 집콕 생활을 견디고 있다. 2·8·10살 세 남매와 함께하다 보니 삼시세끼 돌밥(돌아서면 밥 차리는 것), 끊임없는 이어지는 청소에 대안은 하나, 살림살이를 줄이는 방법밖에 없었다. ‘매일 3개씩 버리기’ 프로젝트를 세워 불필요해진 건 덜어냈다. 버리기 아까운 건 ‘나눔’하거나 당근마켓을 이용해 중고 거래를 하고 있다. 비운다는 생각에 착한 가격에 중고 물품을 판매한 뒤 ‘비움통장’을 만들어 저축했다. 티끌 모아 태산. 지난 8개월 동안 30만원을 모았다. 김씨는 “집이 헐렁해지고 깔끔해질수록 통장은 두둑해지고 있다”며 “어느 정도 목표 금액이 쌓이면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한 선물을 할 것”이라고 했다.

인천 주안동 문수지(31)씨도 작년 10월 블로그를 통해 미니멀 라이프를 접하고서 매일 3개씩 비우기 프로젝트를 했다. 100일간의 기록을 블로그에 남기다 보니 함께하는 동지도 생겼다. 100일 프로젝트를 끝내고 한동안 주춤하다 얼마 전 다시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하루에 한 공간씩 정해 비우고 있다. 버리는 물건이 많아질수록 집안일이 줄어들었다. 살림에 효율성도 생겼다. 없거나 부족한 물건이 있어도 사지 않았다. 모두 불편한 대로 살 수 있었다. 버리기 아까운 물건은 중고 거래를 애용했다. 비움을 실천하며 중고로 물건을 판매해 40만원을 저축했다. 문씨는 “목돈이 될 때까지 비움 재테크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 중인 문미리나씨가 정리 후 한층 넓어진 집 거실에서 딸과 함께 휴식을 취하고 있다./장은주 영상미디어 기자

◇선(先)정리 후(後)비움

심리·정신과 전문가들은 무언가를 채우고 비워내지 못하는 것을 ‘불안 심리’로 설명한다. 코로나 사태라는 또 다른 상황은 불안 심리를 더욱 자극해 미니멀 라이프를 방해하는 중. ‘최고의 인테리어는 정리’를 쓴 정리 컨설턴트 정희숙씨는 “가족이 함께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며 버리지 못하는 습관이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며 “이제는 생존 차원에서도 ‘선택적 비움’과 ‘선택적 채움’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심리학자 베리 슈왈츠는 “선택지가 많으면 많을수록 사람은 불행해진다”고 했다. 이른바 ‘선택의 역설’에 따르면 선택지가 많을수록 무력감이 생기며 만족도가 떨어지고 지나치게 기대치가 높아진다는 것. 불안 심리에 선택지를 늘릴지, 생존을 위해 선택지를 줄일지는 오직 마음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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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05, 2020 at 02:09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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